2020. 10. 4. 19:19ㆍ나의 핀란드/헬싱키
2020년 10월 8일이면 제가 태어난 지 30년이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엄청 거창하고 뭐라도 이룬 거 같고 대단하게 느껴져서 좋네요.
지난 2년동안 저에게 큰 변화가 있었어요.
첫 번째 큰 변화는
결혼은 내 인생에 없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던 내가 든든한 남편이 생겼다는 것과
두 번째 큰 변화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삶의 무대가 바뀌었다는 것.
경남 진주에 있는 국립대에 다니던 학생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으니 웃기네요.
핀란드에 오고 나서 2년은 안개가 자욱한 가을 아침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인서울이 목표였던 친구들과 다르게
제일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에 가는 게 제 목표였어요.
더 잘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었던
영문학과 정치 외교학을 전공으로 정했죠.
영어 선생님이 되지 않더라도
국제기구 외교관이 되지 않더라도
배우고 싶었던 내용을 직접 선택해서 배우는 게 인생에 새로운 자극이었어요.
작은 선택이지만,
좋아하는 걸 스스로 결정 내릴 수 있다는 것.
학교 생활이 원하던 것과 달라서
방황하던 중 지리산으로 트래킹을 갔어요.
지리산 트래킹 행사를 주관했던 사무장 언니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언니에게 검색하는 걸 좋아하고 잘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가 자기가 아는 사람이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저의 프리랜서 일이 시작되었죠.
공채나, 시험을 준비해서 어느 직장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일을 구한 게 아니라서
핀란드에 왔을 때 면접을 준비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내 인생에 질문도 제대로 못 던지는 사람이구나.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어떤 질문을 나에게 던져야 할까?
내가 가진 박스의 틀을 깨는 것부터 시작했죠.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나는 뭘 할 때 가장 즐겁지?'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고 그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에 있을 때는 오늘, 다음 주 살 방법만 생각했던 프리랜서의 삶을 살았고
선택의 고리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죠.
내가 살고 있는 삶에 질문할 틈이 없었어요.
그 질문을 피하기도 했고 용기도 없었어요.
불안하고, 두렵고 자신도 없었죠.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가?
도전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안전빵을
삶의 목적보다는 당장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다음날 내야하는 휴대폰 비, 버스 카드비가 우선이었으니까요.
핀란드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해쳐나갔을까?'
인터넷에 조사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일기장에 답답한 마음을 썼죠.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처럼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꿈을, 내가 좇고 싶어 하는 가치를 포기하는 건
내 삶을 버리는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어요.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직업과 꿈을 가지고
남들이 정해준 삶을 사는 게 내 인생의 목표인가?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30세가 되면 어느 정도의 연봉을 벌고
어떤 동네에 집을 사고
전기차를 몰고
특정 브랜드의 옷을 사서 입는 사람이 되는 게 내 목표인가?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가치가 나에게 중요한가?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렇게 살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
나는 이걸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잊지 않고 나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삶을 공유하고 싶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도 이렇게 느껴도 괜찮은 거구나
30세가 되는 4일을 앞두고
내 이름 앞에 Forbes 30 Under 30 가 붙지 않아도
내 이름으로 된 집과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2020년 10월 4일 헬싱키에서
최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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