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생 앞자리가 바뀌다. 30세 생일 홈파티

2020. 10. 13. 06:00나의 핀란드/헬싱키

핀란드에서는 30살이 된다는 게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핀란드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 파티를 열어야 하나..

스웨덴에 있는 가장 친한 사촌동생도 핀란드에 자유롭게 오지 못 하고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해도 과연 친구들이 얼마나 마음 편하게 파티에 올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30세 생일은 아주 중요한 파티라 파티를 안 하면 후회할 거라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회용 손세정 물티슈를 집안 곳곳에 두고 환기를 시켰다.

 

대부분 초대한 친구들은 최근에 개인적으로 만난 친구들이고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렸을 땐 2020년..

그럼 나는 30세네?

2020년엔 날아다니는 차가 있는 사회를 상상했었는데

날아다니는 차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의 순수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거 같다.

 

30세가 되면 엄청난 어른이 되고 

뭔가를 대단하게 이룬 사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30살이 되어서 180도 달라지거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더 이상하지만.

이런 나이에 대한 압박감, 나이에 대한 관심, 관점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느끼는 거 같다.

 

나에게 나이는 오히려 25살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할 때 더 현실로 다가왔었다.

물론 그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 고민이 괴롭진 않다.

나에게 이런 고민이 주어진 게 얼마나 다행이고,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마음의 틈에 조그마한 여유가 생긴 것.

 

사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위에 이미 30세가 되기 전에, 30세가 되어서 성공한 친구들을 보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비교했다.

나는 왜 30세가 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건 이루지 못했을까?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뭘 하고자 하는지 찾지도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홀대했다.

어느 날 샤워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싶어 할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삶은 내 삶이 아니다. 

그럼 나는 어떤 꿈을 가졌었고, 얼마만큼 이뤄냈을까?

 

20세 영문과를 갔을 때는 번역가가 되고 싶었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20대 동안 번역일로 간간이 돈을 벌었다.  

지금은 내가 태어난 곳과 7,000km 떨어진 핀란드 헬싱키에 산다.

 

이렇게 작은 승리가 내 인생에 많은데

왜 나는 나의 사소한 성취를 남의 성공과 비교하면서 왜 내 성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제대로 된 생일 파티를 했다.  

30세가 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마음과 체력이 있는 것.

행운이다.

이런 사소한 행복이 가득한 30세 생일이었다.

 

친구가 써준 손편지를 읽고 눈물 흘리고

남편이 준 커다란 젤리 곰인형에 기뻐했다. 

 

 

30살은 어른이 되는 느낌이라는데..

30살이 되어도 40세가 되어도 마음속의 inner kid를 지키는 어른이 되고 싶다.

비가 와도 기쁘게 맞을 수 있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사람

나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나는 나 스스로를 만들고 이끌어 온 게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의 친절함, 따뜻한 마음, 배려, 관심, 위하는 마음, 조건없는 사랑, 응원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내 인생 여행에 합류했던, 왔다가 떠났던, 앞으로 오게 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배워서 뿌듯한 30세 생일이었다.

 

헬싱키에서 

최수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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