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처음 왔을 때

2020. 10. 22. 06:00나의 핀란드/헬싱키

 

평일 저녁마다 한 시간 자기 계발 시간 스터디를 한다.

 

오늘 스터디 친구가 나한테 

'수연씨 앞으로 1,2년이 기대돼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잘 써나가고 있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들떴다. 

신난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했다.

그때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한숨, 침묵

그리고 같이 웃었다. 

 

그때 나를 괴롭혔던 걱정과 생각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는데. 

좀 더 그때를 즐길 걸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핀란드에 처음 온 건 2017년 여름이다.

핀란드의 여름은 천국이다.

1달 반을 보내고

핀란드의 겨울이 혹독하다고 해서 구 남자 친구 현 남편과 상의해서 겨울을 3개월 보내기로 했었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헬싱키의 겨울을 즐겼다.

 

2018년 6월 핀란드로 공식적으로 왔다.

 

3년 전만 해도 내가 핀란드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넌 외국사람이랑 결혼할 거 같아' 이렇게 이야기해도 난 내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으니까.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고 하더만.

프리랜서로 일했을 땐 이렇게 일해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는 건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 결정 내리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삶이 나에겐 더 중요했다. 결혼은 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처음에 핀란드에 왔을 때

21살부터 일을 시작했던 내가 경제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게 어색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없고

가족이 없는 곳.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뭐부터 해야 하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집안 청소, 설거지를 했다.

육체적 단순 노동은 잡생각을 떨치기에 최고다.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도 많이 읽고

하염없이 헬싱키를 걸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자신감도 없었다.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일을 하는지 직업을 물으면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왜 묻지? 그게 왜 궁금하지?

그 사람들이 나를 연봉으로 직업의 타이틀로 판단할 거라는 못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안해서 그렇게 느꼈겠지.

 

지금은 핀란드에 온 지 정확히 2년 4개월이다.
서서히 헬싱키에게 정이 들었다.

열심히 걸은 덕분에 헬싱키의 길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에 뭐가 있더라

 

 

지난해 하이브 헬싱키 입학이 좌절됐을 때 나에 대해서 나의 삶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려고 발버둥 쳤다.

 

나는 왜 계속 실패하지?

세상엔 왜 이렇게 멋진 사람이 많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뭐가 부족한 거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알고 봤더니 나는 두려운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4,5살 때 엄마가 어느 학원 갈래 물어봐서

미술이랑 음악이 좋아서 미술학원에 갔는데 미술학원 선생님이 나한테 동그라미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고 혼내서 미술학원을 그만둔 게 기억난다.

20대 글을 잘 쓰고 싶었는데 글을 못 쓴다는 비난을 들었던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림 그리기 두려워하고, 글 쓰는 걸 무서워하지?

그 바닥에 있는 감정은 뭘까? 

나는 창피했다.

나에게 큰 성취감을 주지 않는 일들은 쉽게 포기했다. 

도전하지 않았고, 도망쳤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지 않도록 피해 가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안전한 선택하는 게 익숙했고 편했다.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학습시켰다.

 

내가 가졌던 공포들

자신감이 없어서 미뤘던 일을 천천히 해보기 시작했다.

부딪히기로 했다. 

 

수채화 물감으로 색칠도 해보고 

연필로 스케치도 해보고

영상도 만들어보고

글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책도 읽고

핀란드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고 살던 곳을 떠나서 겪는 경험은 항상 이렇게 낭만적인 건 아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 부정적인 눈빛,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너무 많이 느끼는 날에는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이고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쉽게 동정하지 않게 됐고 판단하지 않게 됐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는지 

옳고 그렇다라고만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좋은 소식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어른아이는 산다.

그리고 긍정파워도 여전하다.

이렇게 오늘을 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