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학교 셋째 날, 드디어 Yle에 가다

2021. 9. 15. 17:27호기심 천국 하고잽이의 삶/다큐멘터리 학교

지난주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뭐지.. 친구 엘비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엘비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직접 만나서 세션을 진행한다는 메일이 왔다!!!!!

 

ㅠㅠ

한국가기전에 모두 볼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너무 행복했다.

 

메일 내용은 슈퍼에 가서 안티젠 테스트를 사고

당일 월요일 아침에 안티젠 테스트를 집에서 하고 테스트가 네거티브면 Yle 방송국으로 오는 거였다.

 

당일 아침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네거티브!

Yle 건물로 향했다.

왜 첫날부터 ... 나에게 시련을.. 트램은 와야 하는 시간보다 빨리 와서 가버렸고

Pasila 기차역 주위는 공사로 트램 노선이 다 바껴서 구글맵이랑 달랐다.

일단 침착하게 제일 가까운 역에서 내리고 Voi 전자 스쿠터를 타고 Yle 건물을 찾으러 갔다.

오락가락하는 핀란드 가을 날씨도 한몫했다.

쨍쨍하던 하늘에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에라이.

가까스로 건물을 찾았는데 빌딩의 문이 여러 개 인 것...

Radiokatu로 오라고 했는데 Radiokatu 5A고

뭔가 건물의 입구일 것 같은 주소는 Iso Paja였다.

 

 

 

일단 Radiokatu로 가서 친구에게 길을 잃었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프로듀서 한 명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그리고 프로듀서 E가 나를 찾으러 왔다.

 

E가 먼저 나한테 Hi라고 영어로 이야기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다들 아는구나... 내 핀어 실력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면서 안도했다. 

 

먼저 늦어서 미안하고 찾으러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가 Radiokatu 5를 찾는데 Radiokatu 5A만 있어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Iso Paja가 올바른 입구라고 했다.

근데 거긴 Radiokatu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굿 포인트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가야 하는 건물이 다른 건물이라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안다고

맨 처음에 BNC로 들어서 부산 국제영화제를 말하나? 했는데 알고 봤더니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였다.

 

드디어 친구 엘비를 만났다.

온라인으로 이야기만 하다가 실제로 만나서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엘비!!!!!라고 외쳤다.

아마 나의 하이텐션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엘비를 놀라게 했을 수도 있다.

 

이때까지 했던 세션 중에 오늘이 제일 좋았다.

친구 엘비도 만나고 프로듀서 세 명 I, R, E도

그리고 6월부터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가 가진 이야기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나의 어떤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감정과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번 주 월요일 세션은 나에게 많은 질문과 답을 줬다. 

20분 동안 다른 사람의 시선, 자기비판은 뒤로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잼 보드에 그 감정이나 시각을 써보는 것.

 

나의 키워드는 이랬다.

정체성, 평등, 인종, 일반적인 삶, 편견, 꿈과 열정, 생산성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정체성: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주눅 늘고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 '어디서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직업이 뭐예요?', '어디 사세요?'

 

평등: 가장 핫한 주제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꼭 풀어야 하는 숙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화는 미래가 없다. 

 

인종: 항상 많이 생각해왔다.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한국 아이가 핀란드 어린이집에 갈 때, 한국 여자분들이 핀란드에서 일할 때, 한국에 아프가니스탄 특별공로자가 왔을 때 등등. 나를 가장 분노에 이르게 하는 주제 중 하나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조용히 있을수도 없다. 너무 화가나고 억울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다른 친구들에 비해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깜둥이라고 놀리면 깜둥이가 왜 나쁜 거지? 생각했다. 친구들이 말하는 태도와 톤에서 그 말이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20년이 지나고 필리핀에 놀러 갔다 오고 요가원에 갔다. 요가 선생님이 나에게 '꼭 필리핀 여자 같네'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 기분이 나빴는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 든 생각은 선생님이 나를 필리핀 여자와 똑같이 취급해서다. 근데 필리핀 여자로 취급받는 게 왜 기분이 나쁜 걸까? 이런 생각이 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봤다. 나의 모자람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나한테 말할 태도와 톤에서도 우월주의와 나보다 못 사는 나라를 깔보는 그런 감정을 느껴서 기분이 나빴던 거 같다. 항상 마음속에 새기려고 하는 가치 중에 내 위에 내 아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주제는 핀란드에 와서도 계속됐다. 모든 사람이 영어 할 줄 알아야 배운 사람이라고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영어를 왜 잘해야하지? 영어를 잘하네라는 코멘트도 어떻게 보면 차별주의다. 어떻게 보면 영어가 공용어가 되는 것도 제국주의의 산물이 아닌다. 약한 나라의 영토와 문화를 마음대로 빼앗고 침략한 게 자랑스러워 해야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 아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못 할 거라는 편견을 전제를 두고. 어렸을 때는 멋도 모르고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싶고 따라 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가진 뿌리와 고유함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 다르니까.

 

일반적인 삶: 최근에 많이 생각해본 주제다. 모든 사람들이 9 to 5 일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아이를 가지는 삶을 목표로 한다. 그 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실패자로 치부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긴다. 왜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까? 왜 나는 다른 서람들과 똑같은 삶아야 하나? 왜 안전한 삶만을 추구해야 할 수밖에 없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까? 내가 잘못된 건가? 다들 괜찮은 건가? 

 

편견: 나에겐 고약한 취미가 있다. 남들이 하는 것에 질문을 하고 제동을 거는 것.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 나는 아버지가 8살 때 윈도 98 컴퓨터를 사 오셨을 때  그리고 그 컴퓨터가 내 방 책상에 차지했을 때부터 게임을 했다. 지뢰 게임, 게임보이 서커스 게임, 일렌시아, 크레이지 아케이드, 바람의 나라 등등. 나에겐 여자가 게임을 하는 건 놀랍지 않다. 근데 대부분 프로 게이머들은 남자들이 많다. 나는 고등학생 때 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을 보며 10km를 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스포츠도 좋아한다. 언젠가 트라이애슬론도 도전해보고 싶다. 여자도 강할 수 있다. 근데 나는 예쁜 옷 입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 메이크업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성: 항상 돈이라는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것. 팔로워 수, 비디오 view, 좋아요 수. 여러 가지 숫자로 자신의 가치가 재어지는 사회. 왜 사람들은 항상 유용한 무언가를 해야 할까? 항상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 

 

꿈과 열정: 나는 어렸을 때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었고, 셰프도 되고 싶었고, 외교관도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도 좋아해서 창의적인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을 거 같았다. 실패를 해도, 어떤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나의 이야기를 깊은 곳에 숨겼다. 나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가치를 남들과 나눌 수 있을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찾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그 과정에 진심이었으면.

 

 

내가 포스트잇에 쓴 주제를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다들 다른 주제를 선택했다.

두세 가지 주제를 선택해서 1-3장 정도의 글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게 다음 단계다.

 

앞으로 2주간은 세션이 없다.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감정이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장면을 상상한다.

천천히 온전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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